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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은 뿔 달린 투구를 쓰지 않았다? –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바이킹의 잘못된 이미지

by Yoonraccoon 2025. 3. 4.

1. 바이킹과 뿔 달린 투구의 기원


바이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뿔이 달린 투구를 쓴 전사들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바이킹이 뿔 달린 투구를 썼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이 이미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뿔 달린 투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영향을 준 것은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유행한 로맨틱 내셔널리즘(Romantic Nationalism)과 함께 등장한 바그너의 오페라였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1876년 초연)에서 무대 의상으로 등장한 뿔 달린 투구는 강력한 전사 이미지를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무대 디자이너였던 칼 에밀 되플러(Carl Emil Doepler)는 바이킹을 좀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뿔이 달린 투구를 디자인했고, 이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퍼지면서 마치 실제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19세기 초 스칸디나비아 신화 연구자들과 화가들이 바이킹을 이상화하여 묘사하면서, 뿔 달린 투구는 더욱 확고한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바이킹 시대(약 8세기~11세기)에는 전투용으로 이런 투구가 사용된 흔적이 없다.

 

2. 고고학이 밝힌 진짜 바이킹의 투구


바이킹이 사용한 투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바이킹 시대의 투구들은 매우 실용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예르문드뷔 투구(Gjermundbu helmet, 10세기경)가 있다. 노르웨이에서 발견된 이 투구는 둥근 철제 투구에 얼굴을 보호하는 가리개가 붙어 있는 형태로, 현대의 전투용 헬멧과 비슷한 구조다. 이 외에도 덴마크, 스웨덴, 영국 등지에서 발견된 바이킹 투구들은 단순하고 기능적인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뿔이 달린 형태는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바이킹들은 뿔 달린 투구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실용성 문제: 뿔이 달린 투구는 전투에서 오히려 방해가 된다. 상대의 무기에 걸리기 쉬우며,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착용자가 불안정해진다.
제작의 어려움: 철제 투구에 뿔을 부착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복잡하고, 전쟁용 방어구로서는 불필요한 요소다.


생존한 유물 부족: 뿔 달린 투구가 존재했다면,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 중 최소한 하나쯤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바이킹 시대의 유물 중 뿔 달린 투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바이킹은 뿔 달린 투구를 쓰지 않았다? –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바이킹의 잘못된 이미지
바이킹은 뿔 달린 투구를 쓰지 않았다? –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바이킹의 잘못된 이미지


3. 바이킹의 실제 모습과 현대의 오해


바이킹의 모습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그들이 항상 전투적인 해적이나 약탈자로만 묘사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바이킹들은 우수한 항해술을 가진 상인, 탐험가, 정착민이기도 했다.

 

탐험가로서의 바이킹: 바이킹들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북아메리카(레리프 에릭손이 발견한 ‘빈란드’)까지 항해하며 교류를 넓혔다.
상인으로서의 바이킹: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와 무역을 했으며,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물품을 사고팔았다.


정착민으로서의 바이킹: 오늘날의 러시아, 프랑스(노르망디 지역) 등지에 정착해 지역 사회와 융합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이후 바이킹은 야만적이고 전쟁만 일삼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이는 영화, 게임, 만화 등 대중매체에서 강조된 극적인 캐릭터 설정 때문이기도 하다. 마블의 ‘토르(Thor)’ 시리즈, 드라마 ‘바이킹스(Vikings)’, 게임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Assassin’s Creed Valhalla)’ 같은 작품들은 뿔 달린 투구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바이킹을 강력한 전사 이미지로 부각시킨다.

 

그렇다면, 현대에서 바이킹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적 연구와 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사실적인 정보를 접해야 한다.
대중매체의 창작 요소와 실제 역사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바이킹의 문화, 신화, 사회적 역할 등을 폭넓게 살펴보아야 한다.


결론


바이킹이 뿔 달린 투구를 썼다는 이미지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19세기 이후 만들어진 신화에 가깝다. 고고학적 증거는 바이킹이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의 투구를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뿔 달린 투구라는 아이콘은 여전히 대중문화에서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오늘날까지 바이킹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미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바이킹이 단순한 전사가 아니라,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탐험가이자 교역자, 그리고 유럽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고, 과장된 이미지와 실제 역사를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과거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